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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Genocide)의 사례모음

지설2000 2023. 3. 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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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genocide)는 천부적 혹은 사회적 요소를 들어 특정 인류 집단을 고의적 및 제도적으로 말살하는 행위, 또는 그러한 시도를 일컫는다.

 

민족, 국적, 종교 또는 인종을 이유로 한 집단을 고의적이고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대량 학살. 그리스어 제노스 - genos("인종", "부족" 또는 "국가")와 라틴어 사이드 - cide("살해")에서 파생된 이 용어는 유대계 폴란드 태생의 법학자이자 국제변호사였던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 20세기 중반에 정립한 개념입니다 

1944년 렘킨은 터키에서 몇십 년 전 일어났던 참극을 보고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고, 이는 이후 1948년에 일반적인 학살과는 구분되는 일종의 범죄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립되었다. 다만 학계나 교육계 등에서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용어로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전반이다.

주로 특정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하기 위한 의도적 행동을 가리킨다. 그 주체는 정부나 정규군일 수도 있으나 민병대와 같은 자생적인 점조직에 의해 수행되는 경우도 많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의도로, 의도가 있다면 집단의 '절멸' 이외에도 '민족적 거세'라는 제한 목표를 설정하여 집단 성폭행을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경우나, 혹은 문화적 탄압 행위 등도 제노사이드로 판단될 수 있다.

이러한 집단 살해의 예시는 고대에도 존재하던 것이었다. 예를 들어 여리고 성이나 아이 성의 경우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유대인들이 원주민이던 가나안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나,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뒤 카르타고가 재기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파괴, 학살을 자행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횡행, 고도의 산업력과 행정력을 가진 국민 국가(Nation State)의 등장, 그리고 과학 기술과 무기의 발달로 인해 집단 살해가 더 자주, 더 대규모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중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벌인 홀로코스트가 악명 높아 제노사이드의 대명사로 자리잡았으며,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산업화, 체계화된 학살'이라는 특성에 있어 현대적 의미의 제노사이드가 정의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종전 후 집단살해 범죄를 정의하고 방지하기 위해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CPPCG)'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도 1950년에 이 조약에 가입했으며, 1995년에 제정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이러한 종류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단체에게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단, 위에서 언급한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집단을 제외한 집단의 학살은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의해 처벌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저 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죄 없는 사람들을 죽여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해당 협약의 범주를 굳이 저 4개 집단으로 한정짓지 말자는 소수 학설도 존재하고, 국제사회에는 꼭 제노사이드가 아니라도 대량 학살, 대규모 인권 탄압, 전쟁범죄 등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수없이 많다.

 

제노사이드(Genocide)의 사례모음

제노사이드 사례들

  • 나치 독일(nazi germany)
    • 홀로코스트(Holocaust) 1945 - 정부가 조직적으로 한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등의 말살 정책을 의미한다.
    • 벨라루스 초토화(Belarus scorched earth) 1941~1944 - 독소전쟁 중 나치 독일이 주도한 빨치산 토벌 정책. 주로 국방군과 SS, 경찰이 토벌 작업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 헤레로족과 나마족 학살(Herero and Namah genocidal) 1904~1908 - 독일 제국이 저지른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
  • 르완다 내전(Rwandan civil war) 1916~ - 20세기 아프리카 국가인 르완다에서 난 후투족-투치족 간의 분쟁을 말한다. 특히 1990년대 후투족의 일방적인 투치족 학살은 제노사이드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영화 호텔 르완다의 배경이다.
  • 부룬디 내전(Burundi civil war) 1993~2005 - 르완다와 더불어 부룬디에도 나타난 후투인과 투치인들의 분쟁들. 보통 르완다 내전과 같이 언급된다
  • 유고슬라비아 전쟁(Yugoslav wars)
    • 보스니아 전쟁(Bosnian war) 1992~1995 -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면서 민족 정체성이 가장 약했고 주변 국가 세르비아(Serbia), 크로아티아(Croatia)들이 땅을 먹으려 했던 보스니아에서 일어났던 여러 인종청소 및 학살들을 뜻한다. 제일 대표적인 것이 세르비아군이 무슬림(Muslim) 보스니아인에게 측에 협력 스레브레니차(Srebrenica) 학살.
  • 아르메니아인 대학살(Armenia holocaust) 19세기말 ~ 20세기초 - 오스만 제국(the Ottoman Empire)의 청년 튀르크당(Turkic party)이 20세기 초반, 자국 내의 소수민족 기독교 신자인 아르메니아인에게 편 제노사이드. 하지만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오스만 제국은 종교적으로 벌인 게 아니라 무슬림인 아랍인들에서부터 아시리아인(Assyrian), 그리스인(Greek) 등에 역시 제노사이드를 가했다. 근대의 대표적인 제노사이드로 50만명 이상의 아랍인(Arab), 750,000명의 아시리아인, 900,000명의 그리스인, 1,500,000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참으로 조직화된 목적을 가지고 학살당했다. 아르메니아인만 죽인 게 아니라고 아랍권 등에서 분노하기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이란 이름부터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와 오스만(Osman) 말기 제노사이드라는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제노사이드(Genocide)의 사례모음

  • 일본(Japan)
    • 중국난징 대학살(Nanjing Massacre) 1937 - 중일전쟁 시기에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저지른 대량 학살이자 전쟁범죄. 특히 여성에게 강간이 매우 많아 난징 대강간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 난징! 난징!, 욘 라베, 진링의 13소녀의 배경이었다.
    • 필리핀 마닐라 대학살(Manila massacre) 1945 - 희생자 대다수가 시가전 과정에서 발생된 포격, 폭격, 유탄에 맞아 사망한 것 보다 일본 육해군의 마구잡이식 방화와 냉병기에 찔려 죽은 게 더 많았던 것. 당시 마닐라 시내에 있던 약 70만 명의 시민들 중 대략 10만명이 이렇게 희생됐으며, 이는 필리핀에서 벌어진 전투들 중에서도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대규모였다. 한마디로 일본군은 미군의 화력에 쫓겨가는 와중에도 마닐라 시민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 신멸작전(Operation Extermination) 1944 - 삼광작전(三光作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군이 행한 조직적 전쟁범죄를 중국에서 일컫는 말이다. 그 말의 직접 출전은 전후 중국 측에 체포된 일본군 전범의 자술서에서 나온 것으로, 중국 측에서 붙인 이름이며 일본군 측이 부르던 명칭은 진메츠(신멸) 작전. 현대 중국어에서 光은 동사 뒤에 붙어 모두 ~를 하여 남는 것을 없게 하다라는 뜻의 보어로 쓰인다. 예컨대 아래 나오는 殺光은 모두 죽이다라는 뜻이다. 삼광이란 다음 세 가지의 지시를 의미한다. 스케일 자체는 중일전쟁에서의 규모가 압도적이라서 주로 중일전쟁 얘기를 의미한다.  
      • 살광(殺光) = 모조리 죽이고
      • 소광(燒光) = 모조리 태우고
      • 창광(搶光) = 모조리 빼앗아라
    •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Massacre of Koreans after the Great Kanto Earthquake) 1923 - 관동 대지진 이후 조선인들에 대한 악성 유언비어로 인해 일어난 학살.
  • 동티모르 학살(East Timor Massacre) - 1975~1999 인도네시아(Indonesia)의 점유 기간을 뜻한다. 이 때 인도네시아가 지배를 견고히 하려고 억압하는 도중에 약 10만여 명의 희생자가 났으나, 어느 특정 집단의 점멸이라는 목적이 없었기에 제노사이드로 보지 않는 이들도 있다.
  • 다르푸르 학살(Darfur massacre) 2003~2004 - 수단 내전(Sudanese civil war)의 주요 원인이 인종 및 종교 분쟁인 만큼 수많은 인종청소(ethnic creansing) 사건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수단 주도의 학살
  • 로힝야족 학살(Rohingya massacre) 2017 - 모든 미얀마인(Myanmar)들의 증오 대상이 된 채로 고립무원의 상태로 핍박당하는 중이다. 그러나 미얀마는 로힝야족 뿐만 아니라 카렌족(Karen)이나 카친족(Kachin), 친족(Chin) 등 다른 자국내 소수민족들에게조차도 탄압과 차별, 학살을 현재 진행형으로 가하고 있다.
  • 부건빌 내전(Bougainwille civil war) 1988~1998 - 오세아니아(Oceania)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에서 일어난 10년간 부건빌 섬에서 나타난 분쟁. 부건빌 주민들은 솔로몬 제도(Solomon Islands)에 가깝다 보니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지역차별과 인종차별 등이 나타나서 내전이 번졌다. 내전 기간 동안 부건빌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학살들이 나타났다.
  • 세르비아인 제노사이드(Serbian genocide) 1995 -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우스타샤(Ustasha)가 주도한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인들에게 자행한 학살.
  •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인 학살(Croatia massacre in Yugoslavia) 1991~1995 - 2차 세계대전 당시 우스타샤가 나타났던 크로아티아에 대한 불만과 의심, 혐오 등으로 나타난 사건.
  • 신장 재교육 캠프(Xinjiang Reeducation Camp) - 신장 위구르 자치구(Xinjiang Uyghur Autonomous Region)의 반중 성향 무슬림 민족들(위구르(Uyghur)와 카자흐(Kazakh))을 목표로 강제로 불임 수술 및 집단 강간, 강제 통혼, 혼혈을 시행하는 상황이다.
  •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학살(Genocide betweekn Jews and Arabs in Palestine) 1948~ - 제1차 중동전쟁을 전후로 하여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 작전명 D, 공식 명칭 '여호수아 계획'이라는 형태로 팔레스타인 아랍인 민간인들을 죽였다. 피의 숙청(bloody purge)이라고 드러난 '데이르 야신 마을 학살사건(Deir Yassin village massacre)'은 1개 마을에서 하루 동안에만 250여명이 죽었고, 영국령(British) 팔레스타인의 북부 도시 하이파(Haifa)는 지프차를 동원해서 방송까지 하면서 학살 이후 소이탄(Incendiary bomb)으로 모두 태웠다.
    • 이런 학살이 드러나면서 제1차 중동전쟁(the Middle East war)이 본격적으로 격화했다. 이후 제1차 중동전쟁이 이스라엘(Israel)의 승리로 기울자, 본격적으로 다시 학살했다. 축출과 파괴라는 형태로 나온 이 학살은 엄청나서, 10월 전투 중에서 다와이마(Dawaima) 마을 학살 사건에서는 아이를 포함한 80~100명을 살해, 사프사프(Sap Saf) 지역에서는 50여 명의 남자들은 우물에 던져 넣고 총격으로 죽이고 14세 여아를 포함한 적어도 4건의 강간 살해, 사사(Sasa)에서는 백기를 확인하고도 1,000여명이 죽고 남은 인원은 마을에서 추방, 살라하(Salaha)에서는 94명이 폭사 등을 이었다.
    • 이 과정에서 1948년 한 해에만 이스라엘군이 400여개의 팔레스타인 아랍인 마을들을 파괴하였고, 영국령 팔레스타인을 탈주한 난민의 수만 75만에 이른다. 그나마 이스라엘 진영을 변호한다면, 이런 학살 사례의 거의 전부는 이르군(Irgun)과 슈테른(Stern) 같은 유대계(Jewish) 테러조직(Terrorist)이 일으킨 것으로 하가나(Haganah)(이슈브(Ishhub)(유대교도 자치정부)의 민방위군는 가능하면 이런 행위를 막으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 비인도적(inhumane)일 뿐 아니라 다수 인구인 팔레스타인 아랍인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지역경제를 붕괴시키고 사회구조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인데, 하가나의 투쟁 방향이 영국군에 대한 테러와 아랍 연합국(아랍 연맹의 회원국들)(Arab United States)의 침공에 대한 방어로 전환되면서 살해당하는 비유대인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1949년의 봄에 이르러 휴전과 함께 은폐하는 것으로 종결했다.

 

  • 캄보디아 제노사이드(Cambodia genocide) 1975~1979 - 킬링필드(killing fields)로 악명 자자한 크메르 루주 공산정권(Khmer Gouge Communist regime)치하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 다만 이것은 모든 학살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소수민족에게 펼친 강제 동화 정책들만 제노사이드로 취급된다.
  • 코소보 전쟁(Kosovo war) 1998~1999 - 알바니아인(Albanian)이 다수인 코소보(Kosovo) 지역이 세르비아(Serbia)에게서 독립하려 하자 일어난 여러가지 학살들. 다만 서방의 뒤늦은 개입과 외교적 오판으로 수많은 보스니아인들의 살육을 초반부터 저지하지 못했던 보스니아와 달리 이 쪽은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가 신속하게 개입하여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
  • 타지키스탄 내전(civil war in Tajikistan) 1992~ 1997 - 내전 당시 타지키스탄 동부의 파미르인(Pamir)들을 대상으로 한 인종학살이 있었다. 동부지역은 이슬람 근본주의자(Islamic fundamentalist)들이 많았는데 파미르인들 역시 다수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었다. 또한 중부의 가름(gharm) 지역 주민(가름인이라고도 부르며, 타지크계지만 약간 부족 내지 씨족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들조차 가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이 나타난 곳이었다는 이유로 파미르인들처럼 무차별 약탈, 학살을 당했다.
  • IS(Islamic State)이슬람국가 - 미국 연방정부(US federal government)가 유권해석(authoritative interpretation) 으로 제노사이드의 사례로 규정했다.